2차대전의 화학무기 참사와 치료제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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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21:45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이탈리아 남부도시 바리의 항구는 연합군 함정으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남부로 진입한 연합군은 항구도시 바리에서
전투에 필요한 보급품을 하역하며 이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는 항구로서의 기능은 좋았으나
한가지 약점이 있었는 데 항공기에 대한 방공망이 부실한 것이었다
적에게 대응할 주변 기지의 항공기 편제도 부족,
지상의 대공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목표가 아니었지만 정찰 이후 계획을 변경, 바리 항구를 성공적으로 기습하면
연합군의 진격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 루프트바페는 105대의 항공기를 출격시킨다
공습은 치명적이었다 제대로 된 방공망이 없던 바리 항구는 독일 공군의 공습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다
연합군 뿐 아니라 바리 항구 주변에 있던 이탈리아 주민들까지도 공습에 휘말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때 바리 항구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있었다
정박 중인 한 수송선에 치명적인 물건이 실려있었기 때문
M47A1은 겨자 가스라 불리는 화학무기가 충진된 일종의 화학탄이었고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때 수포작용제라고 배우는 그것)
중량으로 100톤에 가까웠다
1차 대전에서도 악명을 떨친 가스 중 하나이며 화학무기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였다
이 2000발의 폭탄은 연합군이 독일군이 유럽 전선에서 화학전을 할 경우 보복용으로 쓰기 위해 실어와 보관하고 있던 것이었다
- 공습에 파괴된 존 하비 -
결국 독일군의 공습에 존 하비마저 폭격당했고 폭발과 동시에 안에 있던 M47이 유폭되며
연기에 섞여 그리고 바다에 유출된 기름과 섞여 퍼지기 시작했다
(존 하비의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
바리 항의 연합군은 독일의 공습에 대응하지 못했고
군함, 수송선 등 30척에 가까운 배들이 타격을 입고
수많은 인명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연기와 바다에 기름을 타고 퍼진 겨자 가스가
남은 승무원들과 마을의 주민들을 덮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부상병들과 함께 병원으로 후송된다
- 겨자 가스에 의해 생겨난 수포 -
그러나 당시 병원의 의사들은 정보 부족으로 겨자 가스에 의한 피해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고
폭발 등의 부상자들 위주로 치료하느라 겨자 가스에 노출된 환자들의 상태는 악화되어갔다
628명의 첫 노출환자가 증상을 보이며 괴로워했고
이후 노출된 이탈리아 주민들까지 병원으로 몰리며 상황이 커진다
스튜어트 프랜시스 알렉산더 대령을 이탈리아로 급파합니다
그는 의사이면서 메릴랜드의 육군 시설에서 화학무기 대처 훈련도 받은 전문가였고
병원의 환자들을 체크한 후 겨자 가스에 의한 중독임을 확인하고 의료진을 지도하며 치료를 시작했다
- 스튜어트의 바리 보고서 -
그 덕분에 겨자 가스에 노출된 많은 인원이 목숨을 건졌고 치료 뿐 아니라 연구 자료와 샘플도 꾸준히 수집했다
이후 이 상황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했고 이 자료들과 샘플들이 후에 큰 도움이 된다
(단 알렉산더의 보고서는 한동안 사령부에서 기밀로 분류하고 공개하지 않음)
그러나 치료와는 별개로 미군은 이번 사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영국도 윈스턴 처칠의 명령으로 해당 사건의 서류를 소각, 은폐한다
바리 항에 2천 발의 화학탄을 연합군이 가지고 있었다는 소식이
독일로 들어갈 경우 그들을 자극해 벌어질 상황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후 1944년 연합군 사령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 발표하고, 화학무기 사용은
보복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 이라는 확답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미국에선 1959년 이 사건에 대한 자료의 기밀을 완전 해제)
바리 항구 사태의 정치적 행위와는 별개로
겨자 가스에 노출 된 사람들을 조사하던 의사들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겨자 가스에 노출 된 사망한 이들은 골수가 손상을 받아
백혈구 숫자가 급속하게 떨어지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 알프레드 길먼 -
당시 미국에서 겨자가스 관련 연구를 하고 있던
예일대학교의 '루이스 굿맨' 과, '알프레드 길먼' 은 이 소식을 듣고
이 겨자가스 (정확히는 질소 머스타드) 를 백혈병 치료제로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하게 된다
(1942년에 관련 임상 실험 중이었으나 43년에 바리 항구에서 얻은 데이터로 더 버프를 받음)
백혈구 숫자를 줄여주는 특성을 살려 연구에 들어갔고 환자들에 대한 임상 실험을 진행한다
그리하여 1949년 FDA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은 항암제인
'메클로레타민' 제품명 머스타겐이 탄생한다
백혈병 뿐 아니라 림프종과, 혈액암 환자 등에게도 효능을 보이며 큰 도움을 줬다.
그 당시 걸리면 그냥 죽는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무서운 백혈병 환자들의 생존율을
올려준 약이며 화학무기로 쓰인 겨자가스를 응용해 사람들을 살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게된다.